결론부터 말하면, 독일의 자존심 메르세데스-벤츠가 중국 자율주행 스타트업 모멘타(Momenta)와 손잡고 독일 총리까지 베이징 도로 위 시승차에 태운 건 단순한 기술 제휴를 넘어선 생존을 위한 현실적 타협이라고 봅니다. 전통 완성차 제조사가 하드웨어의 주도권을 쥐고 소프트웨어는 현지 강자에게 맡기는 이른바 '중국 속도(China Speed)'에 올라타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나는 대목이거든요.
이번에 베이징에서 열린 테스트 라이드 행사는 메르세데스-벤츠의 Ola Källenius 회장과 모멘타의 CEO Xudong Cao, 그리고 독일의 Friedrich Merz 총리까지 참석해 꽤나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어떤 기술적 배경과 흐름이 숨어 있는지 질문을 던지며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왜 메르세데스-벤츠는 자체 시스템 대신 중국의 모멘타를 선택했을까?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들었던 의문은 이겁니다. 벤츠는 이미 레벨 3 자율주행 인증을 받은 '드라이브 파일럿(Drive Pilot)'이라는 자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왜 중국 시장에서는 굳이 모멘타의 지능형 보조 주행 시스템을 S-Class와 차세대 올-일렉트릭 CLA에 얹어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중국 도심의 복잡성과 현지 규제, 그리고 무엇보다 '데이터 수집과 처리 속도'의 격차 때문입니다. 독일 본사에서 개발한 알고리즘을 그대로 들고 와서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혼잡한 도로, 수없이 쏟아지는 이륜차와 무단횡단 보행자, 그리고 독특한 도로 표지판에 대응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현지 도로에서 매일 수백만 킬로미터의 데이터를 쌓으며 학습하는 중국 토착 스타트업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는 거죠.
벤츠는 일찌감치 이 흐름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2017년에 글로벌 완성차 업체 중 최초로 모멘타에 투자를 단행했으니까요. 결국 하드웨어 아키텍처와 차량 제어의 안전성은 벤츠가 책임지고, 인지 및 판단을 담당하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의 두뇌는 모멘타의 알고리즘을 이식하는 이원화 전략을 선택한 셈입니다.
독일 총리까지 태우고 달린 베이징 도심, 실제 주행에서 무엇을 보여주었나?
이번에 공개된 30초 남짓한 짧은 영상 속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직접 S-Class 조수석에 앉아 베이징 도심을 달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모멘타의 자율주행 협력 실증 테스트 영상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베이징에서 직접 벤츠 S-클래스에 탑승해 모멘타의 ADAS 시스템을 체험하는 모습입니다. 복잡한 도심 교차로에서도 부드럽게 감속하고 대형 트럭을 회피하는 성능이 인상적이네요.)
출처: Momenta 공식 유튜브
영상을 보면 차량 전방 카메라와 센서가 붉은색 대형 트럭을 정확히 인지하고, 속도를 줄이면서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정교한 센서 융합 능력을 보여줍니다.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잡지 않은 상태에서도 차선 변경이나 교차로 통과가 매끄럽게 이어지더라고요.
솔직히 독일 총리가 탑승하는 차량에 베타 버전 수준의 시스템을 올렸을 리는 만무합니다. 그만큼 모멘타의 양산형 솔루션이 완성도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겠죠. 실제로 이 시스템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차세대 CLA 전기차에 탑재되었으며, 연내에 무려 9개의 새로운 모델에 추가로 적용되어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모멘타의 'R6 강화학습 모델'은 무엇이 다를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기술 키워드는 바로 모멘타의 차세대 업그레이드 기반이 될 'R6 강화학습 모델(R6 reinforcement learning model)'입니다.
기존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빨간 불이면 멈춘다", "앞차와 거리가 10미터 이내로 좁혀지면 감속한다" 같은 수만 가지의 규칙(Rule-based)을 인간이 직접 코딩해 넣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예측 불가능한 도로 위의 수많은 예외 상황, 즉 롱테일(Long-tail) 문제에 직면하면 시스템이 얼어붙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모멘타의 R6 모델은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시스템이 가상 시뮬레이션과 실제 도로 주행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떤 주행 행동이 가장 안전하고 부드러운지' 스스로 학습하며 보상을 받는 구조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 기술이 양산차에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하면, 테슬라가 자랑하는 엔드투엔드(E2E) FSD 모델과 아주 흥미로운 대결 구도가 형성될 것 같습니다. 테슬라가 방대한 비전 데이터 기반의 모방 학습에 치중한다면, 모멘타는 강화학습을 통해 인간의 개입 없이도 최적의 경로와 주행 궤적을 실시간으로 찾아내는 데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진정한 양산 SDV 시대를 앞당길 오픈 협력의 가치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상징인 S-Class에 중국 스타트업의 소프트웨어가 깊숙이 이식되는 모습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기술 유출이다", "브랜드 가치 훼손이다"라며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을 유럽 제조사들이 이제는 생존을 위해 가장 빠르고 유연한 파트너를 찾아 동맹을 맺고 있습니다.
과거에 차량 제어 제어기(ECU) 하나를 수정하기 위해 독일 본사의 승인을 몇 달씩 기다려야 했던 구조로는 매주 무선 업데이트(OTA)로 진화하는 중국 전기차들과 경쟁할 수 없습니다. 벤츠가 보여준 이번 행보는 결국 하드웨어의 신뢰성과 소프트웨어의 민첩성을 어떻게 타협하고 융합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도 이러한 유연한 아키텍처 개방과 현지 파트너십 전략을 더 과감하게 벤치마킹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드웨어 플랫폼을 쥐고 있으되, 소프트웨어는 가장 영리한 플레이어에게 넘겨주는 결단이야말로 진짜 SDV 시대로 가는 지름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 자료 및 공식 영상 (References)
- 영상 출처: Momenta 공식 유튜브 채널 / Onsite Video Coming — an inside Look at Chancellor Friedrich Merz’s Test Ride